매년 2월이면 대학마다 학사모를 쓰고 사진 찍는 졸업생들로 분주하다. 바야흐로 졸업시즌이 다가온 것이다. 이번에
건축학부를 졸업하는 이정욱(28세)·안충근(24세) 씨도 오는 2월 22일(금)이면 늘 꿈꿔오던 학사모를 쓰게 된다.
두 사람은 성씨도 나이도 학번도 틀리지만 서로의 졸업을 혈육보다 더 축하해주며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이 처음 가까워진 것은 이정욱 씨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지난 2004년. 5년제인 건축디자인전공은 학생 수가 적어 늘 한데 뭉쳐
다니는데다 학년이 같아 수업도 비슷해, 나이가 많은 정욱씨가 뇌병변 장애로 몸이 불편한 충근씨의 옆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챙겨주면서부터 둘은
캠퍼스 커플(?)처럼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충근이가 점심을 건너뛰는 게 제일 안타까웠어요.”
중학시절부터 뇌병변 장애를 앓아온 안충근 씨는 수족이 자유롭지 못하고 음식을 잘 넘기지도 못하기 때문에 굳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식사하기보다는
점심을 굶고 일찍 하교하는 것을 택했던 것이다.
불편한 몸이지만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충근씨의 고집 때문에 두 사람은 많이 다투기도 했다. “(충근이가) 강의 중간에 자꾸 물어 와서
쉬는 시간에 설명해 주겠다고했는데 강의가 끝나고는 토라져서 말도 안하길래 달래도 보고 혼도 내고 그랬죠. 나중엔 오히려 제가 놓친 부분을
충근이에게 물어본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하루가 멀다하고 다투는 여느 형제들과 다를 바 없었다. 3년을
줄곧 붙어 다니며 형제처럼 서로 돌봐주고 아껴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졸업식에서 경일대 총장상을 받게 된 이정욱 씨는 “대한민국 건축대전
등의 공모전 수상이나 평균 학점 4점이 넘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모두가 충근이와 같이 공부했기 때문”이라며
둘의 우정을 과시했다.
“취직도 같이 했더라면 옆에서 평생 서로 도울 수 있었을 텐데…”지난학기 두 사람은 나란히 전공을 살려 건축사사무소에 실습을 나갔다. 정욱씨는
그 곳에 취직해 올해 1월부터 직원으로 출근하게 됐지만 충근씨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컴퓨터로 하는 작업은 일반인들만큼 해낼 수 있는 충근씨를
위해 학과 교수들을 비롯해 주위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실업률이 높은 요즘 장애우에 대한 사회의 문턱은 여전히 높은 듯 했다.
이정욱 씨는 “아직 젊으니까 실망하진 않아요. 충근이가 제게도 자주 도움을 줬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라며
자신감을 표현했고, 안충근 씨는 “졸업이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졸업소감을 말했다.
“출석부를 보고 성이 다른 것을 알기 전까지는 너무도 정겹게 서로의 학업을 도와주길래 친형제인줄 알았다”는 김종성 교수(건축학부 학부장)의
말처럼 졸업 후에도 친혈육 같은 두 사람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