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 윤정헌교수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5/02/18
- 조회수
- 1177
영남일보 위클리 포유 2005 02 17
[시네마 라운지] 그때 그 사람들
생생한 현장감…완성도는 미흡
운명의 그날 밤 그 사람들, 블랙코미디로는 역량부족
1979년 10월26일 저녁, 궁정동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은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쓰게 한다. 이름하여 '10·26사태'. 이 날의 현장에 있었던 어느 가수의 히트곡명이기도 한 영화의 제목은 운명의 그날 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칭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모두가 아는 사건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광고문구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기승전결의 완벽한 플롯을 가진 여느 영화와는 다른 형식을 취한다. 누구나 다 아는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그날 밤 누가 누구를 죽였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느냐의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비극적 운명에 맞서는 그때 그 사람들의 극한 상황 속 정황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하무인 경호실장(정원중)의 독주에 대통령 시해를 결심하는 중앙정보부장(백윤식), 이성적 판단보다는 상관과의 의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주과장(한석규)과 민대령(김응수), 대통령의 만찬에 초대되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충격을 간직하게 되는 두 아가씨(조은지·김윤아), 비번날 아내와의 고궁나들이를 미루고 불려나왔다가 확인사살에 가담하게 되는 경비원 원태(김상호), 주과장과 같은 해병대 출신이란 이유로 경호원 저격에 차출되는 운전수 상욱(김성욱), 이들 모두는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역사의 희생양이란 것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임에 분명하다.
이와 함께 대통령을 '할아버지'라 지칭하는 중정요원들을 통해 내비치는 권부에 대한 자기비하, 대통령과 하룻밤 인연을 맺은 딸 때문에 정보부에 끌려온 어머니(윤여정)와 이를 통해 전달되는 당대 권부의 여색조달과정, 서슬푸른 경호실의 주도로 행해진 허구성, "우리 같이 살자"며 친구(경호처장)에게 권총을 겨누는 한석규의 애절한 눈빛 등에서 촉발되는 생생한 현장감이 사실 여부를 떠나 26년 전의 그날 밤으로 그럴듯한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그러나 '블랙 코미디'를 표방했던 제작진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엔 굵직한 꼬리표가 붙는다. 팬티차림의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는 경호실장, 대통령의 치부를 급히 가리는 장성의 군모, 죽음의 총구 앞에서 마지막 조크를 던지는 대통령 등의 장면에서 보여지는 바처럼 당대 정권의 실체적 부조리를 풍자하는 데 이르렀다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단순한 희화화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엔딩 자막이 올려지는 순간, 객석에선 '아직 끝이 아닌데' 하는 관객들의 아쉬운 표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윤정헌(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sijeongjun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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