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 박병기 동문, '멸사봉공' 안타까운...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4/08/04
- 조회수
- 2060
영남일보 2004 08 03
경북도교육청 사무관 '멸사봉공' 안타까운 죽음
경북도교육청 직원들의 요즘 '화두(話頭)'는 지난달 29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시설담당사무관 박병기씨(47·사진)이다.
숨지던 날도 일거리를 싸들고 새벽녘까지 끙끙거리다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대구가톨릭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일과 결혼했냐"는 타인들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아내 윤선혜수씨(40)와 자식이 잠던 새벽에 출근해야 직성이 풀렸고, 식구와 함께 오붓하게 하루 세끼를 함께 먹어보지 못했던 그였기에 유족들과 경북도교육청 전 직원들의 슬픔은 더욱 큰 것.
부고를 접한 도승회 교육감과 교육청 전직원은 물론 심지어 서울에서 교육받던 동료와 부하 직원, 울릉도에서 근무하는 동기, 퇴직자들까지 만사를 제쳐두고 밤새워 빈소를 지켜주었다. 지난달 30일 오전 교육청 앞 마당에서 올려진 노제에선 그를 아는 직원들이 유족들보다 더 오열해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가톨릭병원 영안실의 한 관계자는 "일반 문상객이 여느 상주들보다 더 서럽게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망자의 생전 삶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다"면서감동했다.
박씨는 대구공고를 나온뒤 1976년부터 포항 교육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96년 청송교육청 재직시절에는 청송과 하양을 오가며 주경야독한 끝에 경일대 대학원(건축구조)을 졸업, 2000년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평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 때문에 자가용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명절이면 자녀 선물보다 연로한 아파트 노인들에게 양말 한 켤레와 1만∼2만원을 손에 꼭 쥐어주곤 하던 그였다. 이처럼 주위의 귀감이 돼 그는 86년 교육부장관상, 96년 감사원장상을 받기도 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자'란 가훈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아내의 꿈도 기꺼이 키워줬다. 그 덕분에 아내가 대구 교도소 재소자와 고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10여년간 봉사할 수 있게 '외조(外助)'를 했다.
"그분은 남편, 아버지를 떠나서 진정 청렴한 공무원이었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참 사람이었습니다."
윤씨는 생전에 남편과 함께 못했던 '사부곡(思夫曲)'을 목놓아 부르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제2의 삶을 다짐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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