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매일-'서가에서' 신재기교수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4/07/26
- 조회수
- 2024
매일신문 2004 07-16
<서가에서-사전>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당혹스러운 일 중에 하나가 어떤 우리말 어휘나 한자를 코밑에 내밀며 그 의미, 발음, 표기법 등에 관해 갑자기 물어오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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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너 엉터리구나’ 하는 듯이 물어온 사람의 얼굴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모르는 점을 전문가에게 물어 정확한 지식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본인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인데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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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의 하나가 아마 사전을 찾는 일일 것이다. 사전을 잘 이용하면 문제 해결이 쉽게 이루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전 찾는 데 매우 인색한 것 같다. 추측건대 학생이나 전문직 종사자들 중 일년에 한 번도 국어사전을 들춰보지 않는 사람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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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국어사전을 찾는 방법조차 모르는 이도 있다. 더욱이 인터넷 검색이 확대된 오늘날 사전은 거의 뒷전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사전의 언어는 모든 것을 동일하게 취급해버리는 폭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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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는 사전을 언어의 시체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라고 말한 자도 있다. 사전의 언어들이 모든 사물을 획일화하고 의미를 탄력성 없이 고정화시킨다는 지적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전적인 의미가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의 확산을 방해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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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전은 앎의 출발선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확성을 지향한다. 사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사전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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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가의 한 부분에는 각종 사전들이 꽂혀 있다. 나는 그것들을 아끼고 만든 사람의 노고에 항상 감사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서가를 볼 때마다 얼마나 다양한 사전이 비치되어 있는지 눈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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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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